전장·로봇 공급망의 기록
로봇·모빌리티 테마와 전장(자동차 전자부품) 공급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공시·거래소 데이터로 정리한 사실의 타임라인.
전 371편 · 26 / 47 페이지
배터리 속 '나노 밧줄': 전자가 다니는 길 '도전재'와 실리콘을 묶는 CNT
배터리 소재라 하면 양극·음극·전해액·분리막을 떠올리지만, 그 사이에 숨은 첨가제가 하나 더 있다. 활물질 사이로 전자가 잘 흐르게 이어주는 '도전재'다. 예전엔 카본블랙을 썼지만, 이제는 전도성이 뛰어난 탄소나노튜브(CNT)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충전 때 4배로 부푸는 실리콘 음극재를 붙잡아 주는 단일벽 CNT는, 전기차 주행거리 경쟁의 숨은 열쇠로 떠올랐다.
배터리의 '판막' EV 릴레이: 전류를 잇고 끊는 고전압 스위치와 국산화
전기차에 시동을 걸 때 차 밑에서 나는 미세한 '톡' 소리, 그것이 EV 릴레이가 배터리와 모터를 연결하는 소리다. 릴레이는 평소엔 배터리 전류를 흘려보내다가, 사고나 화재 때는 순식간에 전류를 끊어 고전압 시스템을 지키는 안전 스위치다. 배터리가 심장이라면 릴레이는 판막인 셈이다. 이 보이지 않는 스위치를 국산화해 세계 완성차에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의 이야기다.
픽셀을 '보행자'로 바꾸는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인지 SW'와 스트라드비젼의 SVNet
자율주행의 눈이 카메라라면, 그 눈이 본 것을 '저건 보행자, 저건 차선'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이 인지(perception)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그저 픽셀 덩어리만 볼 뿐이다. 포항에서 출발한 스트라드비젼은 값비싼 반도체에 덜 기대면서도 사물을 정밀하게 알아보는 SVNet으로 글로벌 완성차 13곳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자율주행 공급망의 '보이지 않는 층'을 파고들었다.
깎지 않고 쌓아 만든다: 자동차 개발을 바꾸는 '적층 제조'와 현대차 AMSC
자동차 부품은 오랫동안 금형으로 찍거나 금속을 깎아 만들었다. 그런데 금형은 비싸고, 한 번 만들면 모양을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금형 없이 설계 데이터만으로 재료를 한 층씩 쌓아 올려 부품을 만드는 '적층 제조(3D 프린팅)'가 자동차 개발의 속도를 바꾸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남양연구소에 문을 연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가 그 변화를 보여준다.
배터리의 '혈액' 전해액: 4대 소재 마지막 조각과 엔켐의 글로벌 톱3 도전
배터리 4대 소재 가운데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전해액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이온이 헤엄쳐 건너가는 '길'이자 배터리의 혈액이다. 그런데 이 액체는 셀의 성격에 맞춰 매번 새로 조제해야 한다. 부푸는 실리콘 음극, 전압을 높인 양극, ESS용 LFP까지 저마다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이 맞춤 조제 경쟁에서 국내 기업 엔켐이 북미를 발판으로 글로벌 톱3를 노리고 있다.
배터리에서 '쇳가루'를 걷어내는 자석: 탈철기와 대보마그네틱의 보이지 않는 1위
배터리 화재의 씨앗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쇳가루 한 톨일 수 있다. 양극재·음극재 가루에 섞인 금속 이물질은 내부 단락을 일으켜 발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배터리 소재를 만들 때 강력한 자석으로 이 철분을 걸러내는 '탈철기'가 필수 공정이 된다. 이 보이지 않는 장비에서 세계 1위를 지켜온 국내 기업, 대보마그네틱의 이야기다.
가루를 빚어 로봇 관절을 찍어낸다: 금속분말사출성형(MIM)과 휴머노이드 초소형 감속기 국산화
휴머노이드 로봇의 손가락과 관절에는 손톱만 한 정밀 금속 부품이 수십 개씩 들어간다. 이렇게 작고 복잡한 부품을 깎아서 하나씩 만들면 값이 비싸고 양산이 어렵다. 그래서 금속 가루를 반죽해 플라스틱처럼 찍어낸 뒤 구워 굳히는 '금속분말사출성형(MIM)'이 주목받는다. 자동차 부품으로 이 공법을 다져온 한국피아이엠이 8mm 초소형 감속기를 앞세워 로봇 부품 양산에 도전하고 있다.
전기를 '다스리는' 검은 코어: 전기차 전력변환 속 페라이트와 리액터의 국산화
전기차 안에는 전기를 만드는 부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다스리는' 부품이 있다. 충전기와 컨버터 속에서 요동치는 전류를 붙잡아 매끄럽게 다듬는 리액터와 트랜스포머가 그렇고, 그 심장에는 산화철로 만든 검은 자성체, 페라이트 코어가 들어간다. 희토류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 소재가, 중국의 자원 무기화 국면에서 조용히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화전자와 상신전자 같은 국산 소재 기업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