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체 없이 SDV를 먼저 달려본다: 현대차·기아 '와이어카'와 전장·하네스 통합 검증
완성차 한 대의 성능은 이제 엔진이나 차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수백 개의 제어기와 전장 부품, 그것을 잇는 와이어링 하네스가 서로 오차 없이 대화해야 비로소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가 굴러간다. 전자신문이 2026년 7월 2일 공개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르포에는, 차체 없이 이 전기·전자 시스템만 실차처럼 연결해 미리 달려보는 시험대가 등장한다. 새로 조성된 검증 인프라 '노바랩',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와이어카'다.
와이어카는 실제 차량과 동일하게 구현한 테스트베드다. 현대차·기아 SDV는 제어기·전장 부품·와이어링 하네스 같은 다양한 전기·전자 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노바랩은 이 시스템들이 제대로 동작하는지를 완성차 조립 이전에 검증한다. 김상연 노바랩 파트장은 전자신문 인터뷰에서 "2019년부터 와이어카를 개발했다"며 "SDV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제어기·전장·와이어링 하네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해 사전에 문제점을 없애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바랩은 파트장 1명과 연구원 18명 등 총 19명 규모로 운영된다.
왜 이런 '가짜 차'가 필요할까. 뉴스핌이 같은 날 전한 남양연구소 르포에 따르면, 대형 차종은 제어기와 전장 부품이 수백 개에 달하고 와이어링 커넥터도 촘촘하게 연결된다(업계에서는 대형차 기준 제어기·전장 부품 약 300~500개, 커넥터 약 500개 수준으로 본다). 완성차를 다 조립한 뒤에야 통신 오류나 기능 충돌을 발견하면 제어기를 다시 뜯고 소프트웨어를 고치는 부담이 커진다. 노바랩은 차체 없이 이 복잡한 회로망을 먼저 구성해 기능·통신·진단 오류를 앞단에서 잡아낸다. 현장에서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주행보조, 차로 유지 보조, 후측방 충돌방지 같은 ADAS 기능이 실제로 동작하는지가 검증되고 있었다.
이 흐름의 뿌리에는 전장 아키텍처의 통합이 있다. 중앙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통합 제어 아키텍처(CODA)를 통해 제어기 개수를 약 66%, 센서·커넥터를 잇는 와이어링 하네스를 약 28%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어기와 배선이 줄면 차량 무게가 내려가고, 무선 업데이트(OTA)와 기능 확장도 쉬워진다. 흩어져 있던 수십 개 ECU를 소수의 도메인·존 컨트롤러로 모으는 전환이, 검증 방식 자체를 '완성차 시험'에서 '회로 선행 검증'으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 2027년~현대차·기아 SDV 순차 출시 시작(전자신문)
- 제어기 66%·하네스 28%↓CODA 통합 아키텍처 적용 시 감축 효과(현대차그룹 설명)
- 약 500개대형 차종 와이어링 커넥터 수, 제어기·전장 부품은 300~500개(업계·현장)
노바랩은 단독 시설이 아니라 남양연구소의 '가상 선행 검증' 라인업 한 축이다. 270도 곡면 스크린과 6축 모션 플랫폼을 갖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실차를 만들지 않고도 주행 성능을 개발·검증하며, 신차 한 대는 개발 과정에서 최소 2~3회 이 시뮬레이터를 거친다. 디지털측정센터는 3D 스캐너로 부품 단차를 잡고, 적층제조솔루션센터는 금형 없이 시작품과 단종 부품을 찍어낸다. 현대차·기아는 이르면 2027년부터 SDV를 순차 출시하며 이 인프라로 개발 속도와 완성도를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공급망 관점에서 이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검증 인프라의 무게중심이 옮겨갈수록 '무엇을 납품하느냐'의 정의도 바뀌기 때문이다. 개별 ECU 단품을 대량으로 넣던 시대에서, 여러 기능을 묶은 도메인·존 컨트롤러와 고신뢰성 전장 모듈을 통째로 검증받아 넣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모듈 단위의 사전 검증 문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미 통합 제어기와 전장 모듈을 양산해 온 협력사일수록 진입 장벽이 방어막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대목에서 모베이스전자(012860.KQ) 같은 국내 전장모듈·차체 도메인 컨트롤러(BDC) 업체의 배경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다만 위 세 매체의 르포는 현대차·기아 내부 검증 인프라를 다뤘을 뿐, 특정 협력사나 모베이스를 이 프로젝트에 직접 연결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SDV 전환이 도메인·존 컨트롤러 수요와 전장 모듈의 집적도를 끌어올리는 큰 방향이라는 점은, BDC·전장모듈을 현대차그룹에 공급해 온 업체들에 우호적 배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는 확정된 수주나 계약이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에 기반한 해석이다.
결국 와이어카는 '차를 만들기 전에 차의 신경계를 먼저 완성한다'는 발상의 상징이다. SDV 경쟁의 승부가 소프트웨어 완성도와 전장 통합에서 갈린다면, 그 완성도를 앞단에서 담보하는 검증 인프라와, 검증을 통과할 만큼 신뢰성을 쌓은 전장 모듈·컨트롤러 공급망이 함께 몸값을 키울 수 있다. mobilitychain은 이 검증의 무게중심 이동이 국내 전장 밸류체인에 어떤 기회로 번지는지를 계속 기록한다.
본 글은 공개 자료에 기반한 정보 제공 목적의 기록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