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류가 지나는 '은빛 살갗': 시안화물 없는 'Ag-PTFE 도금'과 전기차·로봇 커넥터 접점의 숨은 수명
전기차와 로봇이 고전압·고전류로 갈수록, 전류가 실제로 몸을 바꿔 흐르는 곳은 커넥터와 릴레이의 접점(接點)이다. 그 접점 표면에 입혀진 수 마이크로미터의 도금층이 부품의 신뢰성과 수명을 좌우한다. 전기신문 보도(2026년 7월 1일)에 따르면 한국재료연구원(KIMS)이 독성이 높은 시안화물을 쓰지 않으면서도 기존 은(Ag) 도금보다 더 단단하고 덜 닳는 차세대 은도금 기술을 개발했다. 부품 서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표면처리'가 국산화 궤도에 오르는 사례다.
왜 하필 은인가. 은은 전기전도성이 가장 뛰어난 금속에 속해 접점 도금재로 널리 쓰인다. 문제는 은이 상대적으로 무른 금속이라는 데 있다. 커넥터가 반복해서 결합·분리되고 릴레이가 수없이 스위칭을 되풀이하면 표면이 쉽게 긁히거나 마모된다. 전기신문에 따르면 도금층이 손상되면 접촉 저항이 커지고 전기적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어, 더 내구성 높은 은도금 기술이 꾸준히 요구돼 왔다.
해법으로 주목받은 것이 마찰이 낮은 PTFE(테플론 계열 불소수지)를 은도금층에 섞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여기엔 오래된 딜레마가 있었다. PTFE 입자가 도금액 안에서 쉽게 뭉치는 데다, 많이 넣으면 도금층이 물러지고 적게 넣으면 마찰 저감 효과가 부족했다. 그래서 높은 경도와 낮은 마찰을 동시에 잡는 일이 표면처리 분야의 오랜 난제로 남아 있었다.
재료연구원 에너지·환경재료연구본부 김세일 박사 연구팀은 불소계 계면활성제 'FC-4'를 적용해 도금액의 산성도와 계면활성제 농도, PTFE 첨가량을 정밀하게 제어했다. 그 결과 PTFE 나노입자가 서로 뭉치지 않고 은 도금층 내부에 고르게 분산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균일하게 퍼진 PTFE는 도금층 안에서 고체 윤활제 역할을 하며 마찰을 크게 낮췄고, 은 결정은 더 미세하고 치밀하게 형성돼 강도를 끌어올렸다. 실제로 개발된 Ag-PTFE 복합도금층은 순수 은도금보다 경도가 약 23% 높아졌고, 마찰계수는 0.2 이하를 유지했다.
- 경도 +23%순수 은도금 대비, 마찰계수는 0.2 이하로 저마찰·내마모 동시 확보
- 시안화물 프리독성 시안화물 없는 산성 은도금 공정, 폐수·환경규제 대응
- SCT (IF 6.9)국제학술지 Surface & Coating Technology 게재, 관련 특허 출원 중
친환경이라는 축도 함께 붙었다. 기존 은도금 공정은 독성이 높은 시안화물을 쓰는 경우가 많아 작업자 안전과 폐수 처리, 환경규제 대응 측면에서 개선 요구가 이어져 왔다. 이번 기술은 시안화물을 쓰지 않는 산성 은도금 공정을 적용해 이 부담을 줄였다는 점에서 산업적 가치가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혁신사업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성과는 표면처리 분야 국제학술지 'Surface & Coating Technology'(피인용지수 6.9)에 게재됐고 관련 특허도 출원 중이다.
적용처는 넓다. 전기신문에 따르면 개발된 기술은 전기차 커넥터와 릴레이 접점, 스위치, 리드프레임, 각종 전자부품 단자처럼 반복적인 접촉과 마찰이 발생하는 다양한 전기접점에 쓸 수 있다. 전기차의 고전압·고전류 시스템이 커질수록 접점의 신뢰성이 중요해지는 만큼, 부품 수명 연장과 유지보수 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는 수십 개의 액추에이터와 전원분배 접점을 품는 로봇에도 확장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번 발표가 로봇을 직접 적용 대상으로 명시한 것은 아니다.
냉정히 볼 지점도 있다. 이번 성과는 아직 연구·특허 단계이며, 실제 양산 라인 적용과 수요기업 채택까지는 신뢰성 검증과 공정 안정화라는 별도의 관문이 남아 있다. 출처 역시 이 기술을 특정 부품사나 완성차·로봇 기업과 연결하지는 않았고, 재료연구원의 연구 성과로만 소개했다.
mobilitychain 관점에서 이 소식의 함의는 부품의 '보이지 않는 0.001mm'에 있다. 감속기·모터·자석 같은 큰 덩어리 부품에 관심이 쏠리는 사이, 전류가 실제로 건너가는 접점의 표면처리·도금 원천기술은 커넥터·릴레이 같은 후방 부품 경쟁력의 조용한 토대다. 소재와 공정을 스스로 쥐는 나라가 늘수록, 전기차와 로봇이 공유하는 전장 부품 생태계의 국산화 저변도 함께 두꺼워질 수 있다. 접점 위 얇은 은빛 막 하나가, 몇 년 뒤 부품 신뢰성 경쟁의 숨은 변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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