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칩스법'과 태국의 SiC 승부수: 한국 전력반도체 기술이 동남아 전기차 공급망의 씨앗이 되다
전기차의 심장을 도는 전력을 다스리는 부품이 탄화규소(SiC) 전력반도체다. 이 칩은 그동안 유럽·미국·일본계 소수 업체가 사실상 주도해 왔다. 그런데 2026년 7월 7일 파이낸셜뉴스 보도는, 이 판에 예상 밖의 도전자가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아세안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태국이 자동차 생산 기반을 지렛대 삼아 차량용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한국 기술이 놓여 있다.
보도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2026년 1월 총리 직속 '국가 반도체 및 첨단전자 정책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지난달 '국가 반도체 로드맵 2050'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2조5000억바트(약 114조원)를 유치해 세계적 제조 허브로 도약하고, 전문 인력 23만명 양성과 함께 SiC 전력반도체 공급망 구축·첨단 전자제품 국산화율 50% 달성으로 '칩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규모와 목표치는 태국 정부가 제시한 수치로, 실제 달성 여부는 향후 투자 집행에 달려 있다.
- 약 114조원태국 '반도체 로드맵 2050'의 2050년까지 목표 유치액 (파이낸셜뉴스, 2026-07-07)
- 2027년한국 파워마스터반도체 기술 기반 태국 첫 SiC 웨이퍼 팹의 양산 목표 시점
- 1200V파워마스터반도체 차량용 SiC MOSFET의 내압 등급, OBC·DC-DC·E컴프레서 적용
핵심은 이 로드맵을 물리적으로 시작하는 첫 SiC 웨이퍼 공장이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태국 하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한국 파워마스터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태국 최초의 SiC 웨이퍼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7년 양산이 시작되면 자국산 전력반도체를 전기차 산업에 공급하는 수직계열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인피니언이 사뭇프라칸 전력모듈 공장을 가동한 것과 나란히, 태국이 완성차 조립을 넘어 부품 상류로 올라가려는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씨앗을 제공한 파워마스터반도체는 어떤 회사인가. 전자신문의 2024년 12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충북 오창의 자체 공장에서 2세대 1200V SiC MOSFET 제품군을 양산하고, 냉각 효율을 높인 상단 냉각 방식 '탑 사이드 패키지(TSPAK)'를 출시했다. 이 패키지는 상부 방열판으로 열을 더 효율적으로 식혀 고성능 전기차에 적합하며, 차량용 반도체 신뢰성 국제 규격 'AEC-Q101'을 획득해 전기차의 온보드 충전기(OBC)·DC-DC 컨버터·전동 컴프레서 등에 적용할 수 있다. 회사는 당시 해외 완성차·부품사를 상대로 영업을 전개 중이라고 밝혔다.
이 두 조각을 잇대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한국의 SiC 설계·제조 노하우가 국내 양산에 머물지 않고, 동남아 신흥 반도체 거점의 초기 기술 표준으로 이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뉴스는 태국이 지난달 아세안 장관급 회의에서 '아세안 칩스법'을 제안해 국가별 인센티브를 표준화하고, 설계는 싱가포르·제조는 태국·후공정은 말레이시아로 분업하는 '제3의 반도체 블록'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갈등 속 단순 생산기지를 넘어선 독자 공급망 경쟁이 본격화하는 국면이다.
한국 입장에서 이 흐름은 위협인 동시에 기회다. 아세안이 자체 SiC 생태계를 키우면 장기적으로 경쟁자가 늘 수 있다. 그러나 그 생태계의 초기 뼈대에 한국 전력반도체 기술과 장비·소재가 스며들 여지 또한 커진다. 차량용 SiC는 설계·패키징·신뢰성 인증까지 진입장벽이 높아, 후발 거점일수록 검증된 외부 기술 제휴에 기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태국의 첫 팹이 한국 기술로 출발한 사실은 그 진입로가 이미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제휴의 지속성·확장 범위는 아직 초기 단계로, 향후 양산·수율 성과로 확인될 필요가 있다.
mobilitychain의 관점에서 이번 사안은 '전장에서 로보틱스로'라는 서사의 한 축인 전력반도체 공급망이 국경을 넘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좌표다. 참고로 이번 보도가 명시한 한국 기술 주체는 파워마스터반도체·하나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며, 모베이스전자 등 전장모듈 업체를 이 사안에 직접 연결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차량용 SiC 수요가 동남아까지 확산되는 흐름은, 전력변환·전장모듈 국산화를 추구하는 한국 부품 생태계 전반의 저변을 넓히는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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