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셀을 잇는 '2.2미터 회로 리본': 전기차용 FPCB와 시노펙스의 베트남 증설
전기차 배터리 팩을 열어보면, 수백 개의 셀을 하나의 전기 회로로 묶는 얇은 띠 모양의 부품이 지나간다. 각 셀의 전압과 온도를 읽어 배터리관리시스템(BMS)으로 보내고, 셀에서 셀로 전력을 전달하는 연성회로기판(FPCB) 모듈이다. 과거에는 딱딱한 배선과 커넥터, 버스바가 하던 일을 이제는 구부러지는 한 장의 회로가 대신한다. 스마트폰 화면과 카메라를 잇던 연성회로가, 자동차의 심장부인 배터리 안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시노펙스는 7일 베트남 옌퐁 사업장에 150억원(1000만달러) 규모 시설 투자를 집행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고객사의 신규 전기차 모델 출시에 맞춘 증설로, 올해 말 혹은 내년 초 본격 공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2024년 준공한 옌퐁 공장의 2단계 투자로, 1단계 800만달러(약 120억원)로 핵심 설비와 양산 라인을 구축하고, 이후 200만달러(약 30억원)를 추가 투입해 생산 효율을 끌어올린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 150억원시노펙스 옌퐁 2단계 투자액(1단계 120억+효율화 30억, 회사 발표)
- 2.2m새로 확보하는 FPCB 표면실장(SMT) 라인의 최대 길이(기존 1.5m 대비 대형화)
- 2022년시노펙스가 전기차용 FPCB를 신성장 사업으로 낙점한 시점, 4년 만에 양산 진입
이번 증설의 핵심은 초장축(超長軸)이다. 회사에 따르면 새 라인은 국내 최대 2.2m 길이의 FPCB 표면실장(SMT) 생산 시설로, 기존 1.5m 설비 대비 더 큰 제품을 양산할 수 있다. 배터리가 고용량화되고 주행거리가 늘면서 모듈 자체가 커졌고, 그만큼 셀을 잇는 회로도 길어졌다. 시노펙스의 2.2m 라인은 중간 연결 없이 단일 FPCB에 반도체 등 부품을 실장하는 공정이라고 한다. 연결 지점을 줄이면 그만큼 고장 확률과 공간 낭비가 줄어, 팩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왜 하필 '연성'이어야 하는가. 배터리 팩 내부는 셀이 빽빽이 들어찬 3차원 공간이다. 딱딱한 기판으로는 굴곡진 셀 배열을 따라갈 수 없고, 두꺼운 전선 뭉치는 무게와 부피를 잡아먹는다. 구부러지는 한 장의 회로가 셀 상단을 덮으며 전압 감지선과 온도 센서 배선을 한 번에 정리하면, 조립 공수와 무게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에서 셀 접속 시스템(CCS) 영역은 연성회로가 기존 배선을 빠르게 대체해 온 대표적인 부품군으로 꼽힌다.
시노펙스는 자동차 품질경영 시스템(IATF 16949) 인증을 이미 획득했고, 최근 고객사 생산 라인의 양산 검증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중심이던 FPCB 사업을 전기차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방산으로 넓힌다는 구상이다. 다만 회사가 밝힌 '글로벌 고객사'가 어느 완성차·배터리 업체인지는 공개되지 않았고, 공급 물량과 매출 기여도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향후 공시나 실적을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
이 뉴스가 mobilitychain의 시야에서 의미 있는 이유는, 전장화의 물결이 '회로기판'이라는 가장 밑단의 부품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서 규모의 경제를 쌓은 국내 연성회로 업체들이, 자동차 품질 인증과 대형화 설비라는 문턱을 넘어 배터리·데이터센터로 사업을 다변화하는 흐름은 여러 부품사에서 공통으로 관측된다. 완성차의 전동화가 늦춰지더라도, ESS와 AI 데이터센터라는 또 다른 전력 수요처가 같은 부품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부품사 입장에서 수요 기반을 넓히는 배경이 될 수 있다. 다만 완성차 고객의 양산 일정과 물량 확정이 실제 성장의 관건이라는 점에서, 발표된 투자와 실제 공급의 간극은 계속 지켜볼 대목이다.
본 글은 공개 자료에 기반한 정보 제공 목적의 기록이며, 투자 권유가 아니다.